잡담
[단편 소설] 어리석은 이의 이야기 본문
글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는 썩 유쾌한 편은 아니다.
오히려 불쾌해질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다른 이들이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그리고, 변하지 않은 어리석은 나를 위해서.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도 찬란하게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다른 평범한 이들처럼 회사에 취직해 직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바라보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생각해 보면, 가족들도 나의 직장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때의 나는 행복했으니까.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아갔기에 아무렴 괜찮았다.
나는 내 직장이 마음에 들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일하던 직장에서 꽤나 뛰어난 편이었고 생각한다.
직장 동료들도 다른 이들보다는 나와 협업하는 것을 선호했다.
덕분에 직장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사장님도 괜찮은 분이셨다.
좋은 분이라고 확답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주셨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직장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당연히 있었다.
내 직장에 대한 불만이라고 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말이다.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 딸린 자회사 비슷한 단체가 어느 순간부터 생겨났다.
실제 회사였는지는 모르겠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런 쪽에는 문외한인지라 알아듣지 못했었다.
다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나와 내 직장 동료들을 비롯한 우리 회사의 직원 대다수는 그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을 싫어할 이유는 너무나도 많았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업무는 우리가 전부 맡았고, 그 녀석들은 좋은 것들만 쏙쏙 빼앗아갔다.
우리는 모두 어째서 사장님이 그들을 가만히 두는지 몰랐다.
회사에 짐이 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사장님의 최측근 중 한 분이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원래 계시던 사장님이 더 좋은 자리를 찾아 옮기셨다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새로운 사장님은 좋은 분이셨다.
이전에도 직원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셨던 분이었다.
사장님이 바뀌었다고 나의 업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커져갔다.
직장 동료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다들 새로운 사장님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 사이에서 어쩌면 새로운 사장님이 그 녀석들을 우리 회사에서 끊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나도 그 의견에 동감했다.
이전 사장님과는 다르게 새로운 사장님은 결단력이 있으신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몇 동료들이 새로운 사장님에게 자회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들이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었다.
사장님은 그 의견을 듣더니, 잠시 고민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회사의 게시판에 공지가 하나 붙어있었다.
내용은 자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던 업무는 충분히 우리 회사의 인력으로 대체 가능하며, 부족하다면 신규 채용도 진행할 것이라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나를 비롯한 회사 직원들은 모두 환호했다.
그 녀석들을 더 보지 않아도 된다니.
회사의 암덩어리같은 존재였던 그들을 드디어 잘라낸 것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회식을 하며 축배를 들었다.
새로운 사장님은 확실히 저번 사장님보다 좋았다.
회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마 나의 근무 환경, 그리고 어쩌면 월급까지도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새삼, 전의 사장님에 만족하던 나의 모습이 다시금 보였다.
과거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흔히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아무튼, 새로운 사장님이 오신 뒤, 나의 미래는 더 밝아보였다.
내일이 더 기대가 되는, 그런 행복한 삶이었다.
그 녀석들을 쫓아 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마 한 달 뒤 정도였던 것 같다.
회사 매출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실 그 녀석들이 하던 업무가 생각보다 비중이 컸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바라봐도, 그들이 하던 업무는 별것 아닌 게 전부였다.
직장 동료들도 대부분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들은 회사의 썩은 부분이었고, 결국 언젠가는 도려냈어야 했다.
아마 회사 매출이 떨어진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
사장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었다.
잡다한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곧 매출이 다시 상승할 것이다.
그 녀석들이 하던 업무는 우리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네 달, 아니면 아마 다섯 달 정도 지난 뒤였던 것 같다.
여전히 회사 매출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정말 그 녀석들이 우리 회사에 필요한 것이었을까.
몇몇은 사장님이 그 녀석들을 쫓아낸 것에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와 대다수의 동료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지내던 중, 곧 게시판에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사장님께서 매출 하락의 원인을 조사하신 결과를 발표한 것 같았다.
한 달 전 즈음부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이제야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매출 하락의 주요 원인은, 그 녀석들을 쫓아내 업무에 지장이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회사의 인력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오판이었다는 말도 함께 있었다.
그 오판의 원인은, 내가 속해있던 부서의 업무 수행 능력이 예상보다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결과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적혀 있었다.
첫 번째는, 명예퇴직이었다.
그럴싸하게 적어놓았지만, 결국 회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나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연봉 삭감이었다.
기존에 받던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먹고살기만 하기에도 벅찬, 그런 정도였다.
아마 우리에게 주는 최소한의 배려였던 걸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분노했다.
우리가 회사에 바친 시간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 부서는 회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사장님에게 가서 항의했다.
우리를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그런 우리에게, 차분하게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그리고는, 이 결정을 번복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장님의 반응을 보아서는, 이미 되돌아가기는 그른 것 같았다.
회사에서 나가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빌붙어 있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있었다.
우리 부서의 몇 명은 명예퇴직을 하고 떠나갔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회사에 남기를 결정했다.
훨씬 적은 돈을 받으면서라도 말이다.
남아있는 것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는 너무 오래 이 회사에 몸 담고 있었다.
떠나기에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떠난다고 해도, 우리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다른 부서의 직원들은 우리를 매우 아니꼽게 바라봤다.
회사가 이 지경이 된 이유를 우리에게서 찾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단지, 계속 부정했을 뿐이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계속해서 세뇌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이 회사에 남아있다.
쥐꼬리만 한 돈을 받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다른 직원들에게 눈치를 받아가면서도 말이다.
내가 그 녀석들을 바라보던 것처럼, 다른 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갈 곳이 없었기에 이 회사를 떠날 수 없었다.
언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던 그 순간부터였을까.
아니면, 새로운 사장님이 온 그 뒤부터였을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인생을 뒤로하며 늘 그렇듯이 나는 오늘도 직장에 간다.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되어버린 나의 인생을 정당화하고 싶기 때문인 거 같기도 했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글을 마치기 전에,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몇 마디만 하고자 한다.
나는 쌀숭이다.
나는 쌀숭이었고, 쌀숭이이며, 쌀숭이일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이들은 나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